유경손의 활동 유치원과 합창단 외의 활동
음악가 유경손

   유경손은 남편 나운영의 음악세계를 가장 잘 이해한 성악가였다.
나운영의 예술가곡과 성가독창곡 원본을 보면 상당수가 알토(Alto)를 위한 조성으로 작곡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반주부가 화려하지 않고 공백이 많으며 레시타티보 형식으로 작곡된 작품이 많은 것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공백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감정이 풍부한 연주가가 필요한데, 바로 유경손이 나운영의 작품을 제대로 표현해 냈던 것이다.
유경손은 나운영의 음악세계를 가장 잘 이해한 성악가였다.   아내인 유경손은 나운영의 음악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의 감수성을 더했기에 나운영의 예술가곡과 성가독창곡의 상당수가 유경손에 의해 초연되었다.
   또 나운영은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시로 수정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 작품발표회를 앞두고 1시간 전에라도 기어이 작품을 고치곤 했는데, 유경손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작품을 연주할 수 있었으니 실로 나운영에게는 가장 필요한 성악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유경손은 유아교육에 전념하여 성악가로서의 길을 계속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서울성남교회에서 반주자로서, 독창자로서 꾸준히 나운영의 작품을 연주하였고, 대한합창단의 반주자로 또는 지휘자로, 또한 운경합창단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음악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갔다.


   유경손은 성악가, 지휘자로서만이 아니라 작사가로서도 가곡,성가곡,찬송가 작사를 다수 발표하였으며, 특히 유아교육 현장에서 유아들의 생활과 심정을 자연스럽게 나타낸 유아를 위한 동시를 다수 창작하였고, 또한 유아를 위한 동요도 직접 작곡하여 출판하였다.

   유경손은 이 외도 한국음악협회 산하 한국합창연합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고(1978~1980), 1968년에는 문교부 유치원 교육과정 심의위원으로, 1980년에는 문교부 유치원 노래편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음악가 유경손] 더보기→

교육자 유경손

   유경손은 해방 직후 24세의 나이에 중앙여자전문학교(현 중앙대학교) 보육과 강사를 시작으로, 조양보육사범학교(현 경기대학), 한국신학대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특히 숭의여자전문대학 보육과에서는 전임강사로 15년간 봉직하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유경손은 18년간 기독교유아교육연합회 전국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유경손은 대학 강의에만 열의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유치원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인 1964년에 대한유치원 교육협회 회장직을 맡아 유치원 원장들의 친목과 교육, 정보 공유에 힘을 다했으며, 특히 1967년 기독교 유아교육 연합회 창설에 적극 가담하여 1977년 2대 회장에 취임한 후 18년간 전국 회장직을 수행하며 매년 강습회와 회원대회를 개최하여 유치원 교사들의 자질 향상과 교육에 힘을 쏟은 후 상임고문 및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교육자 유경손] 더보기→

사회활동가 유경손

   유경손은 서울 YWCA에서 처음 3년 동안 위원직을 빼고는 38년 동안 계속 이사로써 총 41년을 Y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유경손은 38년간 서울YWCA 이사로써 총 41년을 Y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청년부, 교육부, Y teen부, 관리부, 공보출판위원회, 어린이부, 재정부, 성인부, 인사 및 지도자 양성부, 공천위원회 위원장과 회계이사, 서울 Y부회장, 독산동 근로여성회관 건축기성회 회장, 서울 Y 회장 등 비교적 고루 Y각 위원회의 위원장과 회장직을 역임 했으며, 가락종합사회복지관과 장학위원회의 위원장 직을 역임하면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봉사활동에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유경손은 채규철을 도와 청십자 운동과 장애인 이동봉사대인 한벗회의 고문으로 사회봉사를 하였다.

[사회활동가 유경손] 더보기→

기타

   유경손은 서울성남교회에서 32년간 성가대 반주자로 봉직한 것 외에도 집사로, 청년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교회 각종 행사나 야유회 때 진행은 늘상 유경손이 맡았고, 유경손의 집이 교회와 붙어 있던 관계로 유경손의 집은 항상 젊은 청년 신도들로 북적거렸다. 유경손은 이 무리들을 몰고 다니며 단합을 이루어 청년회장 재임시에는 개척교회인 정락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울성남교회 성가대를 사임한 후 1980년부터는 개척교회인 호산나교회(전 운경교회)를 설립하고 장로로 시무하며 교회의 온갖 살림을 도맡아했다.

   유경손은 이 외에도 1995년 오랜 지인인 고해성 목사와의 인연으로 한국인도선교협력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신귀복과 함께 KBS 노래고개 세고개 심사위원을 8년간 하기도 했다.

[서울성남교회와 유경손] 더보기→

Copyright ⓒ unkyung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