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경합창단 지나간 나날들

1. 창단 (1970)

    1970년 2월 11일 여성의 여가 선용과 정서함양을 목적으로 주부들로 구성된 주부합창단이 창단되었다.
    작곡가 나운영을 단장으로 하고 지휘는 유경손이 하였는데, 매주 월요일 오후2시 중구 동자동 17번지에 있는 서울음악아카데미(후에 운경음악학원으로 변경) 2층 교실에 모여 두 시간씩 연습을 하였다.
    28세에서 62세까지의 주부들로 구성된 서울음악아카데미 주부합창단의 초기 단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휘 유경손, 반주 이재경, 총무 김은섭
[제1소프라노] 김은섭,김옥선,김옥섭,김현옥,김복순,김윤자,김보혜,강일랑,노정현,문율리엣다,박기련,서정선,양숙정,양혜석,우수경,유성실,이복순,이은일,이무완,이옥현,이희순,최유산,최공실,하영숙,홍창옥
[제2소프라노] 김신자,김정희,김현재,김호정,김계수,구현심,노강진,박태순,유청희,윤영랑,이명옥,이영실,지복남,최규진
[알토] 강정숙,김희순,김동실,김금례,김경필,박진숙,박숙련,우형선,윤정주,이은자,이복자,이숙자,이향숙,이정순,정지연,최승희


2. 한국음악협회 산하단체로 등록(1971)

    1971년 3월 27일 한국음악협회 산하단체로 가입하고, 4월 15일 제2회 정기연주회를 서울YWCA대강당에서 개최하였으며, 10월 11일에는 청와대 육영수여사를 예방하고 청와대에서 연주를 하였다.
    10월 13일~24일 일본 순회공연(동경,대판,경도,신호 등)을 하였다.
    그 당시 주부들이 해외 공연 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공연을 빙자한 해외여행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담당자에게 공연의 필요성을 설득, 또 설득하여 간신히 도일공연을 성사시켰는데, 12시30분에 중앙청에서 여권을 받아 1시에 비행기에 오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일이었지만, 결국 성사시켜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어머니상을 심어 주었다.
    12일 동안 12회 공연이라는 엄청난 강행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환영과 호응을 받고 돌아와 귀국보고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3. 운경합창단으로 명칭 개정(1972)

    1972년 10월 2일 주부합창단에서 운경합창단으로 명칭을 개정하였다.
    창단한지 2년 밖에 안된 합창단이지만 정기연주회와 해외공연을 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합창단이 주부라는 명칭이 들어 있음으로해서 전문성을 의심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원들 상당수가 대한합창단, 대한어머니회 합창단, 서울 YWCA 주부합창단, 샬롬합창단 등에서 이미 유경손의 지도를 6~7년씩 받아왔기 때문에 결코 실력에서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전문적인 합창단으로 성장하기 위해 운경주부합창단에서 운경합창단으로 명칭를 개정하였다.


4. 동자동 시절 (1973~1976년)

    서울역 앞 동자동에서 운경합창단은 7회의 정기연주회와 3회의 해외공연 및 국가행사와 군 위문, 구치소 위문공연 등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운경합창단 공연의 특징은 모든 레파토리를 악보를 보지 않고 전부 외워서 암보로 공연을 한다는 것이 첫째요, 매 공연마다 관중들과 함께 노래부르는 순서를 넣어 관중들이 합창단의 박수를 받는다는 것이 둘째요, 또 매 공연마다 한복을 입고 공연하는 순서를 넣어 우리 어머니들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보여주는 것이 셋째라 할 수 있었다.


5. 청담동 시절 (1977~1990년)

    운경유치원이 청담동에 유치원을 신축하고 옮겨감에 따라 자동적으로 운경합창단도 청담동 시절을 맞게 되었다.
    지금처럼 지하철과 같은 교통수단이 없었던 시절에 서울 한복판에서 당시에는 생소한 강남이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감에 따라 합창단이 해산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운경합창단 단원들 모두가 끈기와 열정을 가지고 어려움을 모두 극복해냈다.
    이 기간동안 제18회 정기연주회와 미국 순회공연, 동남아 친선순회공연, 희랍 아테네시 공연, 이스라엘 카스 림시와 밭얌 공연, 2차 미국 순회공연 등을 개최하였고, 15년 근속단원들을 표창할 정도로 운경합창단 단원들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6. 가락동 시절 (1991~2000년)

    압구정동, 청담동이 너무 번화해짐에 따라 운경유치원은 송파구 가락동으로 새 건물을 신축하고 이전하게 되었고, 자연 운경합창단도 가락동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연습을 하게 되었다.
    30대에 입단한 단원들이 50이 되었으니, 60대에 입단한 단원들이 남아 있을리는 만무하였지만, 창단 멤버들 대부분이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새로 입단한 단원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1993년 단장 나운영의 갑작스런 소천으로 인해 운경합창단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고, 유경손의 무릎 통증으로 인해 지휘의 어려움이 있어 또한 더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 지휘를 한 공연이 있을 정도로 깊은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합창단을 이끌어감에 따라 창단 30주년 기념 제27회 정기공연을 마치고 해단할때까지 쉬지 않고 매주 연습을 하였으며 1993년에는 호주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때까지 운경합창단의 반주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재경(1970~1972), 장세영(1973~1978), 조길자(1978~1979), 정은영(1980~1986), 한경혜(1986~2000)
    마지막 반주자 한경혜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경손과 함께 한 만년 총무 윤영랑 총무의 따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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